포클랜드 전쟁
포클랜드 전쟁(영어: Falklands War, 스페인어: Guerra de las Malvinas, Guerra del Atlántico Sur)은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자국과 가까운 포클랜드섬을 "수복"하겠다고 선언하며, 영국령 포클랜드섬을 침공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2개월 만에 아르헨티나군이 항복하여 끝났다. 이 전쟁 이후 레오폴도 갈티에리의 군사독재는 실각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전쟁을 두고 말비나스 전쟁이라고 부른다.
시작~종료 1982년 ~ 1982년 6월 14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문서 정보
- 시작 ~ 종료
- 1982년 ~ 1982년 6월 14일
- 날짜
- 1982년 4월 2일 ~ 1982년 6월 14일
- 장소
- 포클랜드 제도,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와 그 인근 해상과 영공
- 결과
- 영국의 군사적 승리 아르헨티나 갈티에리 정권 실각
- 위치
- -51.7500, -59.0000
포클랜드 전쟁(영어: Falklands War, 스페인어: Guerra de las Malvinas, Guerra del Atlántico Sur)은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자국과 가까운 포클랜드섬을 "수복"하겠다고 선언하며, 영국령 포클랜드섬을 침공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2개월 만에 아르헨티나군이 항복하여 끝났다. 이 전쟁 이후 레오폴도 갈티에리의 군사독재는 실각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전쟁을 두고 말비나스 전쟁이라고 부른다.
배경
아르헨티나가 ‘말비나스’라고 부르는 이 섬은 1690년 영국인 존 스트롱이 상륙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1764년 프랑스 왕국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이 처음으로 정착민을 데려와 살게 했다. 이 후, 섬에 정착했던 프랑스 정착민들은 1766년 이 섬의 통치 권리를 스페인에게 판다. 그 후 50년간 영국과 스페인은 이 섬을 나누어각각 통치하였다.
1766년에 영국인들은 이 프랑스 정착촌 존재를 모르는 채로 영국 정착촌을 세웠다. 프랑스 정착촌을 넘겨받은 스페인과 영국이 1771년 전쟁 위기까지 갔었다. 영국은 1774년, 스페인은 1811년에 각각 경제적인 이유로 철수했다. 이들이 철수한 이후 이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되었다. 1816년 스페인에서 독립 선언한 아르헨티나는 스페인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 당시 스페인 영토였던 이 섬도 같이 승계했다고 주장했다.
1826년 아르헨티나는 이 섬 영유권이 아르헨티나에 귀속한다고 공식 선언한다. 1828년에 아르헨티나는 독일인 상인을 대리인으로 파견해서 섬을 관리한다. 그런데 독일 상인이 불법적으로 어선을 나포하고 해적질을 하였다. 미국 어선에 해적질을 처단하려고 미해군 함선 렉싱턴 호가 독일 상인의 기지를 포격해서 파괴했다. 1833년 영국은 해적 행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주변 해역의 안전보장을 하려고 전함을 보내서 포클랜드 제도를 군사력으로 점유한다.
이때 영국이 아르헨티나 이주자들을 내쫓았다는 주장을 최근 아르헨티나 정부가 제기했다. 하지만 영국과 아르헨티나 양측 역사자료에 영국 측이 오히려 이주자에게 남을 것을 권유했다는 기록에 따라 아르헨티나 주장을 부정한다.
그 후 100여 년 동안 영국이 이 섬을 지배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1946년에 이 섬의 영유권을 다시 주장했다. 1965년 유엔총회는 식민지의 독립을 추구하는 결의(결의 2065/XX)를 채택했다. 영국계 주민들이 대다수였던 이 섬의 주민들은 아르헨티나 지배를 반대했다.
1973년 아르헨티나가 이 섬 영유권을 다시 주장하기 시작했다. 평화적인 해결을 권고한 유엔 결의에 따라 1973년부터 영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협상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1982년 3월, 아르헨티나 정부는 영토 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방법'을 하겠다고 공식 선언한다. 이로써 영국과 아프헨티나느 갈등을 겪는다. 1982년 4월, 아르헨티나는 이 섬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하며 침공한 후 짧게나마 점령에 성공했다.
침공 배경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영유권 때문이라기보다,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 정권이 내부 문제를 외부 위기로 해결하려는 고전적인 정치 수단의 일환이었다고 본다. 즉, 인플레이션과 실업, 정치 혼란, 강제수용소에 반독재 투쟁인사들을 투옥, 고문한 군사독재정권의 인권침해를 비판하는 목소리 등을 잠재우려는 목적이었다느 주장이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포클랜드 전쟁」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8878729)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 r47839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