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배
최현배(崔鉉培, 1894년 10월 19일~1970년 3월 23일)는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 교육인, 국문학자이다. 연세대학교 부총장(명예교수 겸무)을 지냈다. 호(號)는 '외솔'인데, 이는 '한 그루 소나무'라는 뜻으로, 그 이외에 '고송·일송·독송 선생(孤松·一松·獨松 先生)'이라고도 불리었다.
출생~사망 1894년 10월 19일 ~ 1970년 3월 23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94년 10월 19일 ~ 1970년 3월 23일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경주
- 활동기간
- 1920년~1966년 10월 11일(은퇴)
- 수상
-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단장 수상
- 부모
- 최병수(부), 경주 박씨 부인(모)
- 배우자
- 이장련
- 자녀
- 4남(첫째아들 최영해, 둘째아들 최순해, 셋째아들 최신해, 막내아들 최철해)
- 형제
- 최현구(아우)
- 친지
- 최동식(친장손자), 최은경(친장손녀), 이혜자(둘째 며느리), 최규식(친가 족척)
- 웹사이트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 - 외솔 최현배
- 위치
- 35.5500, 129.3167
목차
최현배(崔鉉培, 1894년 10월 19일~1970년 3월 23일)는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 교육인, 국문학자이다. 연세대학교 부총장(명예교수 겸무)을 지냈다. 호(號)는 '외솔'인데, 이는 '한 그루 소나무'라는 뜻으로, 그 이외에 '고송·일송·독송 선생(孤松·一松·獨松 先生)'이라고도 불리었다.
생애
유년 시절
본이 경주인 외솔 최현배는, 1894년 10월 19일에 경상도 울산도호부 울산군 내상면 동리(지금의 대한민국 울산광역시 중구 동동)에서 출생하였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서당과 일신학교(현재의, 울산 중구 병영동 병영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대한제국 한성부(지금의 대한민국 서울)로 상경해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김두봉의 권유로 주시경의 강의를 조선어학강습원에서 듣고 국어학 및 문법 등을 이수하면서 그의 사상에 감화받았다.
청년 시절
1915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히로시마(廣島)에 있는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현재의, 일본 히로시마 대학)에 한국인 학생으로 입학하여 3. 1 대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3월에 전문학사 졸업하였다. 중학교 교사 자격증을 받았으나, 이후 귀국하여 고향인 울산으로 귀향한 후 조선인 상권 확보의 목적으로 공동상회를 설립하였다.
교육 활동
1920년에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경남 부산으로 내려가 부산에 있는 동래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임하였으며 1922년에 일본 제국의 교토(京都)로 건너가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 교육학을 전공하고 1925년 를 받았으며 그해 동 대학원 과정에서 을 수학하였다. 1933년에 한글맞춤법통일안 사업에 참여하여 한글보급에 힘써왔으며,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우리말을 가르칠 수 없자 도서관 사서로 일하였다. 1942년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인해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함남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을유 해방 후 출옥 및 월남하여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써 확립이 고착된 후 편수국장을 지내면서 교과서 편찬을 지도하였다. 1954년 연희대학교(지난 시대의 의 후신)의 교수 자리로 돌아와 문과대학 학장과 부총장을 역임하고 1959년 교수직에서는 정년 퇴임했다. 최현배 선생은, 1939년 문과 교수일 때에 제자인 시인에게 조선어 곧 우리말을 가르치셨는데, 윤동주 시인이 매우 열심히 공부하여 조선어 과목의 성적으로 100점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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