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염
최염(崔琰, 163년? ~ 216년)은 중국 후한 말기의 관료로, 자는 계규(季珪)이며 청하국 동무성현(東武城縣) 사람이다. 공명정대하고 성실한 인물이었다.
출생~사망 163년 ~ 216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최염(崔琰, 163년? ~ 216년)은 중국 후한 말기의 관료로, 자는 계규(季珪)이며 청하국 동무성현(東武城縣) 사람이다. 공명정대하고 성실한 인물이었다.
생애
젊을 때부터 검술을 익혔으며, 23세 때 병사로 출사하였으나 그 후 학문에 힘써 《논어》와 《한시(韓詩)》를 읽었다. 29세에는 공손방(公孫方) 등과 함께 정현의 가르침을 받았다.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 황건적이 북해를 습격하여 정현은 제자들과 함께 산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식량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정현은 어쩔 수 없이 제자들을 떠나 보냈다. 최염은 도적들이 있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였고, 청주·서주·연주·예주 등을 4년에 걸쳐 돌아다녔으며 멀리는 수춘(壽春)까지 갔다. 그 후 고향에서 독서와 음악을 즐겼다.
대장군 원소는 최염을 초빙하였으며. 최염은 그의 가신이 되었다. 최염은 원소의 병사들이 무덤을 파헤친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를 말렸고, 그 후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되었다.
건안 5년(200년), 원소가 조조와 결전을 치르기 위하여 남쪽으로 군세를 향하자 최염은 원소에게 황제가 허(許)에 있으니 일단은 국경을 지켜야 한다고 간하였다. 원소는 듣지 않았고, 관도(官渡)에서 조조에게 패하였다.
건안 7년(202년) 2월, 원소가 죽었다. 원소의 두 아들 원담과 원상은 세력을 다투었다. 서로 앞다투어 최염을 초빙하였는데, 최염은 병을 핑계로 모두 응하지 않았다. 이에 원상은 최염을 옥에 가두었으나, 음기와 진림이 간하였기 때문에 곧 풀어주었다.
건안 9년(204년), 기주목이 된 조조는 최염을 초빙하여 별가(別駕)에 임명하였다. 조조는 기주의 호적을 보고는 **"30만 명의 병사를 모을 수 있겠다. 과연 기주가 대주(大州)로구나!"**라고 말하며 기뻐하였다. 이에 최염은 전란에 지친 백성들을 돌보아야 한다며 직언하였고, 조조는 곧 사과하였다. 조조가 병주(幷州)를 토벌한 후, 최염은 업에 남아 조비를 보좌하였다.
조조가 위공(魏公)이 된 후, 최염은 상서(尙書)에 임명되었으며 모개(毛玠)와 함께 인사에서 훌륭한 수완을 보였다. 조조가 조비의 동생 을 총애하여 태자에 임명하려 하자, 최염은 조조에게 조비를 태자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조조는 곧 마음을 돌렸고, 최염을 에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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