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우
최근우(崔謹愚, 1897년 12월 17일 ~1961년 8월 3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정치인이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 상과대학에 재학 중 3·1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동경 유학생 2·8 선언’에 서명한 11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후에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하여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에는 1960년에 사회당을 창당했으나 곧 와해되어 군사정권하에 체포,구속되어 1961년 옥사했다. 호는 '우당'(愚堂)이다.
출생~사망 1897년 12월 17일 ~ 1961년 8월 3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4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97년 12월 17일 ~ 1961년 8월 3일
- 출생
- 1897년 12월 17일
- 사망
- 1961년 8월 3일
-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도쿄 상과대학
- 경력
-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건국준비위원회
- 직업
- 독립운동가, 정치인
- 소속
- 사회당
- 위치
- 37.9717, 126.5528
최근우(崔謹愚, 1897년 12월 17일 ~1961년 8월 3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정치인이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 상과대학에 재학 중 3·1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동경 유학생 2·8 선언’에 서명한 11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후에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하여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에는 1960년에 사회당을 창당했으나 곧 와해되어 군사정권하에 체포,구속되어 1961년 옥사했다. 호는 '우당'(愚堂)이다.
생애
1897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 도쿄로 유학을 갔는데 도쿄고상 재학 중 3.1 운동의 도화선이 된 2.8 독립선언에 참가, 2.8 독립선언에 서명한 조선인 유학생 11인 중 한사람이다. 1919년 11월, 하라 다카시 내각의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여운형이 일본 도쿄를 방일할 때 수행원으로 동행했다. 이후 최근우는 여운형을 따라 중국 상하이로 옮긴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 유학 생활을 보냈다. 1928년 귀국하여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0월 중국 선양시 안둥 현으로 이주해 안둥 현 민정청 사무관을 역임하고, 1940년 7월에는 친일 성향단체인 만주협화회 부회장으로 지냈으나 비교적 소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1944년에 국내 유일한 독립운동 단체인 건국동맹에 참가하였으며, 조직의 명을 받고 자신이 '만주협화회'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이용해서 옌안의 화북 조선의용군을 비롯해서 해외 항일독립운동 단체와 연락을 취하고자 여러 공작 활동을 하였다. 1945년 5월에는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접촉하고자 베이징으로 파견나갔지만, 당시 전선이 심화되어서 도저히 까지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번 연락을 취하고자 시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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