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대왕
차대왕(次大王, 71년 ~ 165년, 재위: 146년 ~ 165년)은 고구려의 제7대 국왕이다. 휘는 수성(遂成)이다. 《삼국사기》에선 태조왕의 동모제(同母弟)로, 《후한서》에서는 태조왕의 장자로 기록되어 있다. 태조왕 때에는 장군으로 활약하고 또한 대리청정으로써 국정을 대신 살폈다. 146년 선양을 받아 76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폭정으로 인해 명림답부에게 살해되었다. 신채호에 의하면 차대왕, 신대왕, 인고(仁固) 3형제는 태조왕의 이복 동생이 아니라 서자라고 한다.
출생~사망 71년 ~ 165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1
차대왕(次大王, 71년 ~ 165년, 재위: 146년 ~ 165년)은 고구려의 제7대 국왕이다. 휘는 수성(遂成)이다.
《삼국사기》에선 태조왕의 동모제(同母弟)로, 《후한서》에서는 태조왕의 장자로 기록되어 있다. 태조왕 때에는 장군으로 활약하고 또한 대리청정으로써 국정을 대신 살폈다.
146년 선양을 받아 76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폭정으로 인해 명림답부에게 살해되었다. 신채호에 의하면 차대왕, 신대왕, 인고(仁固) 3형제는 태조왕의 이복 동생이 아니라 서자라고 한다.1
즉위 이전
중국의 후한서나 위서에는 그는 태조왕의 아들이라 한다.
그는 태조왕 치세 후반부터 장군으로 활약하였고 정치에도 간여하였다. 121년 후한의 침입에 대항하여 출전한 수성은 거짓 항복으로 적군을 속여 안심하게 하고 험한 곳을 차지하고 막았으며 몰래 현도·요동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이 해부터 태조왕을 대신하여 국정과 군사를 통괄하였다. 132년, 양신 등의 측근들에게 왕위 찬탈을 권유받은 뒤, 차기 왕위를 넘보는 언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146년, 수성은 측근들의 부추김을 받아 쿠데타를 모의하였으나 실행하기 전에 태조대왕이 먼저 선위하고 물러났다.
치세
147년 차대왕은 자신의 왕위 계승을 반대한 우보(右輔)고복장(高福章)을 처형하였으며 좌보 목도루(穆度婁)도 은퇴하였다. 이에 차대왕은 국가의 주요 요직에 자신의 측근을 임명하였다.
148년에는 태조왕의 맏아들 고막근(高莫勤)을 죽였으며 둘째아들 고막덕(高莫德)은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자살하였다.
165년에 계속되는 폭정에 백성이 견디어내지 못함을 명분으로 연나부(椽那部) 조의(皂衣) 명림답부에게 살해되었다.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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