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익
조익(趙翼, 조 익, 옹정 5년 10월 22일 – 1814년 ...), 중국 청나라의 대표적인 고증학자. 자는 운숭(耘崧). 호는 구북(甌北). 상주부 양호현(陽湖縣) 출신.
출생~사망 1727년 ~ 1814년마지막 수정 2026. 10. 16. 오후 4:27
조익(趙翼, 옹정 5년 10월 22일(1727년 12월 4일) – 가경 19년 4월 17일(1814년 6월 5일))은, 중국 청대의 대표적인 고증학자. 자는 운숭(耘崧). 호는 구북(甌北). 상주부 양호현(陽湖縣) 출신.
약력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건륭제에게 인정받아 군기처의 장경을 지냈다. 그 후 건륭 26년(1761년), 진사에 급제하였다. 건륭 31년(1766년), 진안부의 지부가 되었다. 본래는 전시 일갑 제1명(장원)이 되어야 했으나, 우연히 함께 전시를 치른 이들 가운데 재해 피해 지역 출신 수험자인 왕걸(王杰, 1725-1805)이 있어, 은사로 특별히 일갑 제1명 대우를 받게 되었고, 조익은 제3위(탐화)로 합격 순위가 내려갔다.1 조익은 재상의 길을 걸을 예정이었으나, 합격 순위가 내려간 탓에 한림원 근무가 되었다. 한림원에서는 『통감집람』을 편찬하였다. 그 후 변경의 먼 지방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치적은 올렸으나 보답을 받지 못했고, 실망하여 모친의 병구완을 위해 관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이십이사차기』 등 사학 저술에 전념하였다. 건륭 52년(1787년), 옛 지인인 민절총독 이시요의 막료가 되어 임상문의 난 평정에서 공적을 올렸으나, 특별한 포상은 받지 못하였다. 그 후에는 안정서원의 주강으로서 저술에 전념하였다.
주요 저작
관련 문헌
- 『청사고』 권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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