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신민당
조선신민당(朝鮮新民黨)은 조선독립동맹(朝鮮獨立同盟)의 위원장 김두봉이 1946년 2월 연안파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창당한 공산당이다. 중앙위원회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우선 주석은 김두봉이며, 부주석은 최창익, 한빈이다. 주요 당 간부로는 백남운, 허정숙, 박효삼 등이 있었다. 조선신민당은 전신인 조선공산당에 비해 다소 온건하고 온화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들 사이에선 인기가 매우 높았다. 이 점에서 조선신민당은 조선공산당을 계승한 대중적인 사회주의 당파이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내건 노동자농민 선봉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설립~해체 1946년 2월 16일 ~ 1946년 7월 29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조선신민당(朝鮮新民黨)은 조선독립동맹(朝鮮獨立同盟)의 위원장 김두봉이 1946년 2월 연안파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창당한 공산당이다. 중앙위원회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우선 주석은 김두봉이며, 부주석은 최창익, 한빈이다. 주요 당 간부로는 백남운, 허정숙, 박효삼 등이 있었다.
조선신민당은 전신인 조선공산당에 비해 다소 온건하고 온화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들 사이에선 인기가 매우 높았다. 이 점에서 조선신민당은 조선공산당을 계승한 대중적인 사회주의 당파이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내건 노동자농민 선봉당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46년 조선신민당은 조선인민당을 규합하여 대중적인 공산당으로서 당세를 넓혔으나, 미국과 소련 양측 군정의 분단 정책으로 인해 이북 지역의 당원들은 북조선로동당으로, 이남 지역의 당원들은 남조선로동당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조선신민당의 창당
조선신민당이 창당되기 이전, 김두봉은 조선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하였다. 1937년 남경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어 중경으로 이주한 민족혁명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합작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김두봉의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민족혁명당을 떠나 1942년 4월, 화북 지방의 연안(延安)에 정착하게 된다.
김두봉은 이곳에서 군사 단체를 조직하여 조선인 청년들을 모았으며 이 과정에서 과거 민족혁명당 함께 몸담았던 최창익 일파와 별도로 무장 투쟁을 벌이던 김무정이 합류하게 된다. 김두봉은 같은해 7월 정치 조직으로 조선독립동맹을, 군사 조직으로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華北支隊)를 개편한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을 조직하게 된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김두봉은 12월 13일 자신의 조직을 이끌고 조선으로 귀환하였으나 소련군 김일성에 의해 조선의용군은 무장 해제를 당한다. 김두봉의 조선독립동맹은 모스크바 3상 회의의 지지 성명을 내며 조선공산당과 마찬가지로 찬탁을 결정했고 1946년 2월엔 남쪽에 조직을 파견하여 을 위원장으로 하는 독립동맹 경성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군정기 한반도에서 정치적 기반을 다지게 된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조선신민당」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8721527)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 r44430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