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
정태(鄭泰, ? ~ ?)는 후한 말기의 관료로, 자는 공업(公業)이며 하남윤 개봉현(開封縣) 사람이다. 대사농 정중의 증손이다.
출생 150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4
문서 정보
- 출생
- 150년
- 출생
- ?, 하남윤 개봉현
- 사망
- ?
- 성별
- 남성
- 국적
- 후한
- 경력
- 상서시랑, 봉거도위, 의랑, 양주자사(미임명)
- 직업
- 관료
- 활동 기간
- 후한 말기
정태(鄭泰, ? ~ ?)는 후한 말기의 관료로, 자는 공업(公業)이며 하남윤 개봉현(開封縣) 사람이다. 대사농 정중의 증손이다.
생애
젊을 때부터 재략이 많아 영제 말기에 천하가 장차 혼란스러워질 것을 알고, 몰래 호걸 들과 친밀히 지냈다. 집안은 재산이 풍부해 밭은 사백 경이나 있었으나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어서 언제나 먹을 것이 부족해 명성은 산동에 알려졌다.
효렴으로 추천되어 삼공부에 추천되었으나 공거를 보내도 모두 거절했으며, 후에 영제가 죽었을 때 하진은 정치를 보좌받기 위해 그와 순유, 화흠을 등용해 정태를 상서시랑으로 삼으면서 봉거도위의 관직을 더했다. 십상시와 권력을 다투는 하진이 동탁을 불러들이려 하자 이를 반대했다. 또한 다른 시급한 일들도 진언했으나 하진이 받아들이지 않자 순유에게 ‘하진은 보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며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
과연 하진은 살해되고 동탁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자 정태는 하옹, 오경(伍瓊)과 함께 원소와 연결해 반동탁연합군의 궐기를 유도하였다. 동탁이 이에 대응해 대규모의 군대를 동원하려 하자 아무도 거스르려는 자가 없었다. 동탁의 군세가 커질수록 그 전횡도 심해질 것이므로 정태 혼자 나서서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고 말했다. 동탁이 불쾌해하며 ‘병사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냐’고 묻자 정태는 순간 두려웠지만 다음과 같이 속여 말했다.
동탁은 감격하면서 정태를 장군으로 삼아 반동탁 연맹군에 대항하게 했는데, 어떤 자가 “정태의 지혜는 보통 사람 이상이라 결탁해 산동과 음모를 꾀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에게 병마를 맡기면 그 무리에게 가세하려 할 것입니다. 결국에는 명공의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고 조언하니 다시 거두어 들이고 의랑(議郞)에 임명하여 조정에 잡아두었다.
그 후 동탁이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장안으로 천도할 때 기근까지 발생하여 많은 사대부들이 죽자 정태는 개인 재산을 풀어 날마다 빈객들을 모아 구조해 많은 사람을 구한다. 또한 하옹과 순유, 오경, 충집과 더불어 계획해 함께 동탁을 주살하려 했으나 사건이 누설되어 하옹 등이 붙잡혔다. 이때 정태는 탈출해 무한에서 동쪽으로 도주해서 원술에게 갔는데, 원술은 정태의 의탁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원술이 정태를 양주자사에 제수하려 했지만 정태는 관직에 오르기 전에 도중에 병에 걸려 죽으니 당시 41세였다.
참고 문헌
- 《후한서》70권 열전 제60 정태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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