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용
이장용(李藏用, 1201년 ∼ 1272년 2월 28일(음력 1월 28일))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처음 이은 이인기(李仁祺), 자는 현보(顯甫), 호는 낙헌(樂軒), 본관은 인천이다. 이자연(李子淵)의 6대손이다.
출생~사망 1201년 ~ 1272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6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201년 ~ 1272년
- 휘
- 이은기(李仁祺)
- 출생일
- 1201년
- 사망일
- 1272년 2월 28일 (음력 1월 28일)
- 국적
- 고려
이장용(李藏用, 1201년 ∼ 1272년 2월 28일(음력 1월 28일))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처음 이은 이인기(李仁祺), 자는 현보(顯甫), 호는 낙헌(樂軒)1, 본관은 인천이다. 이자연(李子淵)의 6대손이다.2
생애
아버지는 이경이고, 할아버지는 이응구이며, 증조부는 정정공 이식이다. 고조부는 이자효인데, 이자인, 이자의는 그의 종고조부가 되며, 이자겸은 고조부 이자효와 4촌간이다. 문하시중 경원군공 장화공 이자연의 6대손이 된다. 이공수, 이지저, 이인로 등은 그의 종6대조 이자상의 후손들이다.
1220년(고종 7) 문과에 급제해1 서경사록(西京司錄)으로 나갔다가 내직으로 들어와 교서랑(校書郎)·직사관(直史館)이 되었다.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국자감대사성(國子大司成)·승선(承宣)에 임명되었고2, 1253년(고종 40) 국자시(國子試)를 주관하여 김중위(金仲偉)·김명(金命) 등 98명을 선발했다.3
1256년(고종 43)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1258년(고종 45) 정당문학(政堂文學), 1260년(원종 1)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차례로 승진했고, 같은 해 수태위(守太尉)·감수국사(監修國史)·판호부사(判戶部事)가 더해졌다.
1262년(원종 3)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이듬해 수태부(守太傅)·판병부사(判兵部事)·태자태부(太子太傅)로 승진했다.
1264년(원종 5) 몽골에서 원종(元宗)의 입조(入朝)를 요구했을 때 재상들이 모두 하나같이 머뭇대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이장용만이 홀로 이를 받아들일 것을 굳게 주장해 관철시켰고, 본인도 원종을 따라 몽골에 갔다.
이 때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과 사승상(史丞相)을 입 다물게 하여, 몽골 땅에서 해동현인(海東賢人)으로 칭송받았다.
귀국한 후 원종을 잘 수행한 공으로 문하시랑동평장사(門下侍郞同平章事)로 승진하고, 경원군개국백(慶源郡開國伯)에 봉해졌으며, 태자태사(太子太師)가 더해졌다.
1267년(원종 8) 몽골이 병부시랑(兵部侍郞) 흑적(黑的) 등을 고려에 보내 일본(日本)을 입조하게 만들라는 지시를 전달했는데, 이 때 은밀히 흑적을 설득해 이를 중단시키도록 했고2, 같은 해 동수국사(同修國史) 류경(柳璥), 수찬관(修撰官) (金坵)·허공(許珙)과 함께 (神宗)·(熙宗)·(康宗)의 3대 실록 편찬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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