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원
당 명종 이단(唐 明宗 李亶, 867년 10월 10일 ~ 933년 12월 15일)은 중국 오대십국 시대의 후당의 무장이자 제2대 황제(재위 : 926년 ~ 933년)이다. 장종 이존욱의 실정으로 후당이 혼란에 빠지자, 제장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하였다. 사타족 출신으로 본명은 막길렬 (邈佶烈)이다. 이극용의 양자가 된 후에는 이사원(李嗣源)으로 개명하였고, 황제 즉위 후에는 이단(李亶)으로 개명하였다. 절일은 응성절(應聖節)이다.
출생~사망 867년 10월 10일 ~ 933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0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867년 10월 10일 ~ 933년
- 재위
- 926년 6월 3일 ~ 933년 12월 15일
- 즉위식
- 동광(同光) 4년 4월 20일, (926년 6월 3일)
- 전임
- 장종(莊宗)
- 후임
- 민제(閔帝)
- 휘
- 이단(李亶)
- 이칭
- 막길렬(邈佶烈), 이사원(李嗣源)
- 묘호
- 명종(明宗)
- 시호
- 성덕화무흠효황제(聖德和武欽孝皇帝)
- 존호
- 성명신무광운법천문덕공효황제, (聖明神武廣運法天文德恭孝皇帝)
- 능호
- 휘릉(徽陵)
- 사망일
- 장흥(長興) 4년 11월 26일, (933년 12월 15일)
- 부친
- 덕조(德祖) 이예(李霓)
- 모친
- 효성의황후(孝成懿皇后) 유씨(劉氏)
- 배우자
- 화무현황후(和武顯皇后) 조씨(曹氏), 소의황후(昭懿皇后) 하씨(夏氏), 선헌황후(宣憲皇后) 위씨(魏氏)
당 명종 이단(唐 明宗 李亶, 867년 10월 10일(음력 9월 9일) ~ 933년 12월 15일(음력 11월 26일))은 중국 오대십국 시대의 후당의 무장이자 제2대 황제(재위 : 926년 ~ 933년)이다. 장종 이존욱의 실정으로 후당이 혼란에 빠지자, 제장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하였다.
사타족 출신으로 본명은 막길렬 (邈佶烈)이다. 이극용의 양자가 된 후에는 이사원(李嗣源)으로 개명하였고, 황제 즉위 후에는 이단(李亶)으로 개명하였다. 절일은 응성절(應聖節)이다.
생애
대북(代北, 산시성 지역)의 유목 민족 중 하나인 사타족(沙陀族) 출신 이예(李霓)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용이 뛰어나고 신망이 두터웠는데, 이극용의 양자가 되어, 이사원(李嗣源)으로 이름을 고치고 절도사와 중서령 등을 지냈다.1 거란족 토벌이나 후량 토벌 등에 있어 활약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이윽고, 이극용의 친자 장종(莊宗)이 술에 빠져 점차 정치를 돌아보지 않게 되자, 각지에서 반란이 발발하였다. 무장들이 장종을 살해하고 그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이사원은 처음에는 이를 사양하였으나 세 번을 청하자 926년 60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23 이사원은 수도를 개봉에 정하였다. 그는 아는 글자가 거의 없어서 모든 상주문을 모사 안중회(安重誨)에게 읽어 달라고 하였으며 고문 겸 재상으로 풍도(馮道)를 등용하였다.4 이사원은 환관을 죽여 세력을 억제하였고,5 지배지에 대규모 측량을 행해 세제의 정비를 행하였다. 또 자신도 사치를 금지하고 검약에 노력해 궁녀 수를 줄이고 공물을 받지 않았다.3 또한 탐관오리는 엄벌에 처하고 청백리는 후한 상을 내리기도 했다.3 삼사도(三司徒)를 창설하는 등, 이사원의 대에 국내는 안정되었고, 오대십국 시대의 굴지의 명군으로 칭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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