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사
유소사(柳召史, 1761년 ~ 1839년 11월 23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체칠리아(Caecilia)이다.
출생~사망 1761년 ~ 1839년 11월 23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761년 ~ 1839년 11월 23일
- 출생
- 1761년, 서울
-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 시복
-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
- 시성
-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축일
- 9월 20일
- 위치
- 37.5600, 126.9900
유소사(柳召史, 1761년 ~ 1839년 11월 23일)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때에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103위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세례명은 체칠리아(Caecilia)이다.
생애
유소사는 1801년 신유박해 때에 순교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후처이며, 정하상 바오로와 정정혜 엘리사벳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남편의 권유로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박해 동안에 엄청난 신앙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남편이 체포되자, 그녀 또한 세 자녀와 함께 체포되었다. 얼마 지나 그녀는 세 자녀와 함께 석방되었지만, 남편과 마찬가지로 전처의 아들 정철상 가롤로도 순교한 뒤였으며, 그녀의 가산은 모두 몰수되고 없었다. 그녀는 경기도 광주의 마재(마현) 마을에 있는 시동생 정약용의 집에 가서 살았지만, 시아주머니는 그들에게 냉랭하였으므로, 그들은 갖은 고생을 다하였다.
얼마 못가 큰 딸과 정철상의 아내와 아들도 세상을 떠나고 유소사의 가족들 중 그녀와 자녀 정하상과 정정혜만 남았다. 하루는 그녀가 꿈에 순교한 남편이 나와서 자신에게 천국에 여덟 개의 방을 지었는데, 그 중 다섯 칸은 쓰여지고 있고 세 칸은 그녀와 남은 자식들이 쓸 방들로 비어 있다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 실제로, 당시 그녀의 여덟 명의 가족 중 다섯 명은 이미 순교한 뒤였다. 그 꿈은 유소사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
그녀의 아들 정하상은 외국인 들의 입국에 깊히 연관되어 있었고, 그녀는 그와 몇 해를 떨어져 지내왔다. 그 이별은 그녀에게 고통이었으므로, 정하상이 와 들의 조수가 되자, 그녀는 그들을 찾아가서 아들과 같이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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