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덕왕
위덕왕(威德王, 525년 ~ 598년 12월)은 백제의 제27대 국왕(재위: 554년~598년)이다. 성은 부여(扶餘), 휘는 창(昌)으로, 성왕의 맏아들이다.
출생~사망 525년 ~ 598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4
위덕왕(威德王, 525년 ~ 598년 12월)은 백제의 제27대 국왕(재위: 554년~598년)이다. 성은 부여(扶餘), 휘는 창(昌)으로1, 성왕의 맏아들이다.2
577년 사망한 왕자를 위해 절을 창건했고,3 왜에 경론과, 대대적인 학자와 율사 · 선사 · 비구니 · 주금사 등 승려 집단, 불상 만드는 기술자, 사찰을 지을 목수들을 파견했다.4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절과 부처 등을 만들었다.5 그 뒤, 금속공예사, 기와 굽는 기술자들까지 건너갔다.6 583년에는 비다쓰 천황의 요청으로 고승 일라가 건너갔다.78 584년 백제는 다시 왜국에 불상 1구와 미륵상 1구를 보냈다.910 588년, 백제는 불사리(佛舍利)와 승려 여섯 명, 노반박사(鑪盤博士)로서 장덕 백매순(白昧淳), 와박사(瓦博士)로서 마나문노(麻奈文奴) · 양귀문(陽貴文) · 석마제미(昔麻帝彌) 등 네 명, 화공(畵工) 한 명 등 사찰 건설에 필요한 기술자를 왜에 파견하였다.111213
생애
정치적 위기
554년에 성왕이 전사하자 30살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는 태자 시절부터 국정에 참여하였고, 신라가 강성하여 한강 유역을 정복했을 때는 정벌론을 펼쳤다. 이에 성왕이 대 공격을 결심하자, 554년 자신이 선봉을 서서 공략에 나섰다. 많은 신하가 반대하였으나, 창은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고집스럽게 관산성을 공격했다. 성왕은 성과가 없는 태자를 위로하기 위해 밤길을 달려가다 의 장군 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였는데, 창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고 반성하며 승려가 되려고 하였다. 하지만 신하들이 또 강력하게 만류하자 창은 뜻을 포기하였다. 그는 성왕의 삼년상을 치르고 557년 왕위를 승계했는데, 승계를 미룬 이유는 부왕이 죽은 것에 대한 참회의 의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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