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
우륵(于勒, ?~?)은 대가야의 악사이다. 가야의 가실왕이 중국의 악기인 쟁(箏)을 모방해 가야금(伽倻琴)을 만든 후, 우륵에게 명하여 가야금 12악곡을 짓도록 했다. 이후 신라 진흥왕(眞興王)에게 귀부하여 대가야의 음악을 신라에 전수하였다. 한국에서는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 조선의 박연과 함께 한국 3대 악성(樂聖)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출생 연도 미상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20
우륵(于勒, ?~?)은 대가야의 악사이다. 가야의 가실왕이 중국의 악기인 쟁(箏)을 모방해 가야금(伽倻琴)을 만든 후, 우륵에게 명하여 가야금 12악곡을 짓도록 했다. 이후 신라 진흥왕(眞興王)에게 귀부하여 대가야의 음악을 신라에 전수하였다. 한국에서는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 조선의 박연과 함께 한국 3대 악성(樂聖)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생애
《삼국사기》에 가야금과 노래, 춤을 배웠는데, 우륵이 전수한 12곡을 음란한 음악이라며 5곡으로 줄여버렸다. 우륵은 이에 분노했지만, 음악을 들어보고 나서 "즐거우나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다"고 평하며 그들이 바꾼 음악을 인정하였다.
한편 신라의 대신들은 진흥왕에게 "가야를 망친 망국의 음악 따위는 본받을 것이 못 됩니다."라고 가야악을 받아들이지 말 것을 간언하였지만, 진흥왕은 "가야왕이 음란해 망한 것이지 음악이 무슨 죄가 있는가. 성인(聖人)이 음악을 만드신 뜻은 사람의 감정에 호소해 법도를 따르게 하고자 한 것이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못 다스려지고는 음악과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라며, 결국 우륵이 전수한 가야악이 신라의 궁중 음악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우륵의 출생지에 대하여
《삼국사기》에 "악사 성열현 사람 우륵(樂師省熱縣人于勒)" 이외 구체적인 지명을 명시하지 않으면서 음상사학적(音相似學的)으로 해석하여 유사한 지명을 비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전설
《대동지지》(大東地志) 및 《고령군지》(高靈郡誌)에는, 고령읍 북쪽에 있는 금곡(琴曲)은 우륵이 공인(工人)을 인솔하여 가야금을 연습한 곳이라고 한다. 금곡은 다른 이름으로는 정정곡(丁丁谷)이라고도 했다.1
《삼국사기》에 우륵의 연고지로 기록된 성열현은 사열현으로 지금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으로 비정되는데, 장금대는 우륵이 신라인 세 제자에게 가야금, 춤, 노래를 전수한 곳으로 전해진다. 정약용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는 충주의 탄금대(彈琴臺)와 사휴정(四休亭)을 우륵이 노닐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현존하는 우륵의 고적 및 유물과 기념물 현황은 다음과 같다.
우륵이 등장하는 작품
각주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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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지》가야금(伽倻琴)조 "今治北數里有琴谷世傳于勒率工習琴處"; 같은 책 방리(方里)조 "古國都 郡內面 丁丁谷" ; 같은 책 예금(隸琴)조 "惑云此琴出於金海之伽倻國但金海伽倻世無稱嘉悉王者恐出於此爲是縣北有隸琴谷";《대동지지》"琴谷北三里加耶國嘉悉王之樂師于勒衆中國秦箏而製琴號加耶琴此地卽于勒率工人隸業之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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