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만삼
심만삼(중국어: 沈萬三, 1330년 ~ 1379년)은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 강남 최고의 대부호였다. 중국 역사상 10대 거부에 손꼽힌다. 중국 부호들의 상징이다. 본명은 심부(沈富)이며, 자는 중영(仲榮)이다. 절강(浙江) 오흥(吳興)출신이다.
출생~사망 1330년 ~ 1379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4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330년 ~ 1379년
- 임기
- 1372년 ~ 1379년
- 출생일
- 1330년
- 출생지
- 원나라 저장 성 후저우
- 사망일
- 1379년 (향년 49세)
- 사망지
- 명나라 장쑤 성 쿤산
- 정당
- 무소속
- 위치
- 31.3000, 120.6194
심만삼(중국어: 沈萬三, 1330년 ~ 1379년)은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 강남 최고의 대부호였다. 중국 역사상 10대 거부에 손꼽힌다.1 중국 부호들의 상징이다.
본명은 심부(沈富)이며, 자는 중영(仲榮)이다. 절강(浙江) 오흥(吳興)(현재의 후저우(湖州)시)출신이다.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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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 심우(沈祐) - 원나라 중대부
- 동생 : 심만사(沈萬四)
- 아들 : 심무(沈茂)
- 아들 : 심왕(沈旺)
- 손자 : 심지(沈至)
- 손자 : 심장(沈庄)
- 아들 : 심영(沈榮)
- 손자 : 심삼(沈森)
- 동생 : 심만사(沈萬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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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손 : 심본익 - 심만삼 가문의 대저택 심청(沈厅)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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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에 중국에서 최고로 유명한 대부호 집안이었던 심만삼(沈萬三) 가문이 저우장(주장, 周庄)을 건설하고 발전시켰다. 명사(明史)에는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할 때, 심만삼의 재력의 도움을 받아, 서수휘, 진우량, 장사성 등의 세력을 격파했다고 나온다. 심만삼이 개인 출자로 난징(남경, 건업) 성벽을 쌓고 군대를 포상하는 주제넘은 짓을 하여, 결국 주원장의 미움을 사서 운남으로 귀향을 가게 되었다고 나온다. 심만삼 가문의 대저택 심청(沈厅)은 그의 자손 심본익이 청나라 건륭제 7년(1742년)에 건조한 것이다.
저우장(주장, 周庄)에는 심만삼(沈萬三, 沈万三)의 이름을 딴 것들이 많다. 저우장의 명물 요리인 만삼제(万三蹄)도 심만삼의 유명세를 이용한 요리들 중의 하나이다. 심만삼(沈万三)과 만삼제(万三蹄)는 중국인들에게 '최고의 부(富)'의 상징이다. 또한, 저우장(주장, 周庄)에는 '십찰해'라는 곳이 있는데, 심만삼이 천만냥의 은을 캐낸 곳이라고 한다. 또한, 저우장(주장, 周庄)의 수로(水路)를 심만삼(沈萬三)의 성씨를 따서 '심수로(沈水路)' 라 부르고, 여기에는 심만삼의 수릉(水陵)도 있다. 그러나, 저우장(주장, 周庄)의 대장주였던 재물의 신(財神) 심만삼(沈萬三)과 그의 자손들이 저우장(주장, 周庄)과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린 것만은 아니다.
심만삼은 중국 원(元)말 명(明)초 시기 강남 지역(양쯔강 이남 장쑤성, 안후이성, 저장성 등을 포함)에서 활동하던 거부다.
그는 명나라 초기부터 부자의 대명사로 이름을 알렸는데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재산이 명나라 전체 예산보다도 많았다고 하니 명나라 대표 부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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