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
신면(申㴐, 또는 申沔, 1438년 ~ 1467년 5월 22일)는 조선전기의 문신, 군인으로 신숙주의 차남이며 좌의정 신용개의 아버지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우부승지, 지공조사 등을 역임했고 승정원도승지로 세조를 보필하였다.
출생~사망 1438년 ~ 1467년 5월 22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6
신면(申㴐, 또는 申沔, 1438년 ~ 1467년 5월 22일)는 조선전기의 문신, 군인으로 신숙주의 차남이며 좌의정 신용개의 아버지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우부승지, 지공조사 등을 역임했고 승정원도승지로 세조를 보필하였다.
1467년 함길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시기에 이시애의 난이 발생하여, 조정에서는 그를 동지중추부사로 삼고 어세공(魚世恭)을 함길도관찰사로 삼아 교체하려 하였으나 어세공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시애(李施愛)의 군사가 함길도청 청사를 포위했다. 그는 상황이 위급함을 알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나섰다가 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증 숭록대부 좌찬성 겸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가 후일 아들 신용개의 영귀로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에 가증되었다.
생애
생애 초반
1438년 당시 집현전 학사인 신숙주(申叔舟)와 무송군부인 윤씨의 아들로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고령이고, 공조참의 신포시(申包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우참판 신장(申檣)이고, 아버지는 신숙주는 후일 세조 반정에 공훈을 세우고 영의정을 지냈으며, 어머니 무송군부인 무송윤씨는 세종때의 재상 윤회의 손녀이자 윤경연(尹景淵)의 딸이다. 그의 이복 여동생이자 서녀인 숙원 신씨는 세조의 후궁이 되었다.
정호의 딸과 결혼하였으며 아들 신용개는 후일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관료 생활
음보로 관직에 올라 행 부승(行副丞)으로 재직 중 1455년(세조 1년) 좌익원종공신(左翼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그해 12월 녹사가 되었다. 그 뒤 1458년 도염서령(都染署令), 종부시소윤(宗簿寺少尹) 등을 거쳐 세조의 명을 받고 함길도 도체찰사로 나간 아버지 신숙주를 위문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1461년(세조 7) 3월 사헌부 장령이 되고, 1463년 우부승지‧지공조사(知工曹事), 이듬해 다시 우부승지가 되었다. 1464년 12월 우승지를 거쳐 1465년 무거 참시관(武擧參試官)으로 무과를 주관하였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신면」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9216355)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6 · r1149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