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왕
산상왕(山上王, ?~227년, 재위 197년~227년)은 고구려의 제10대 국왕이다. 신대왕의 아들이자 고국천왕의 동생으로 휘는 연우(延優) 또는 이이모(伊夷模)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다른 이름으로 위궁(位宮)이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의 북사에도 위궁은 그의 이름이라 한다. 《삼국지》 등의 중국의 다른 기록에 의하면 위궁은 산상왕이 아닌 동천왕의 이름이라 한다. 큰형인 고국천왕이 아들 없이 죽자, 형수 우씨의 지지를 얻어 즉위하였다. 그러나 셋째인 그가 서열을 무시하고 즉위하자 그 직후에 둘째 형인 발기가 반란을 일으켰
출생~사망 연도 미상 ~ 227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8
산상왕(山上王, ?~227년, 재위 197년~227년)은 고구려의 제10대 국왕이다. 신대왕의 아들이자 고국천왕의 동생으로 휘는 연우(延優) 또는 이이모(伊夷模)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다른 이름으로 위궁(位宮)이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의 북사에도 위궁은 그의 이름이라 한다. 《삼국지》 등의 중국의 다른 기록에 의하면 위궁은 산상왕이 아닌 동천왕의 이름이라 한다.
큰형인 고국천왕이 아들 없이 죽자, 형수 우씨의 지지를 얻어 즉위하였다. 그러나 셋째인 그가 서열을 무시하고 즉위하자 그 직후에 둘째 형인 발기가 반란을 일으켰다.
생애
신대왕의 아들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와 《삼국유사》에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태조왕과 같이 이빨이 나 있고, 사물을 볼 수 있었다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의 이름이 위궁이라 하나, 중국의 《삼국지》에는 그의 아들 동천왕의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와 《삼국유사》, 중국 《북사(北史)》에 의하면 그는 태조왕의 증손자라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및 삼국유사의 다른 기록에 의하면 신대왕은 태조왕의 동생이므로 태조왕은 그의 큰아버지가 된다.
고국천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고국천왕의 왕후 우씨의 지지를 받아 즉위하였다. 우 왕후는 산상왕의 아내가 되어 다시 왕후에 올랐다. 이것은 고구려의 형사취수 풍습이 남아있는 것이며, 우씨의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산상왕의 형이었던 발기(發岐)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군사를 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3일 동안 산상왕이 농성하는 가운데 고구려 국내에서도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자 발기는 요동으로 망명하였다. 뒤이어 발기가 요동 태수 공손도(公孫度)에게 군사를 빌려 쳐들어 오니 왕은 동생 계수(罽須)를 보내 막게 하였다. 계수가 발기의 군대를 물리치자 발기는 자살하였다.
198년에 환도성(丸都城)을 쌓았고 203년에는 국상 을파소가 죽어 고우루(高優婁)를 후임 국상으로 삼았다. 209년에는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산상왕」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7910997)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8 · r50640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