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원
박충원(朴忠元, 1507년 윤1월 16일 ~ 1581년 2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중초(仲初), 호는 낙촌(駱村)·정관재(靜觀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박광영(朴光榮)의 손자이자 박계현(朴啓賢)의 아버지이다.
출생~사망 1507년 ~ 1581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507년 ~ 1581년
- 출생
- 1507년 윤1월 16일
- 사망
- 1581년 2월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직업
- 문신
박충원(朴忠元, 1507년 윤1월 16일1 ~ 1581년 2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중초(仲初), 호는 낙촌(駱村)·정관재(靜觀齋)1,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박광영(朴光榮)의 손자이자 박계현(朴啓賢)의 아버지이다.
생애
일찍이 외숙부 기준(奇遵)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528년(중종 23) 생원시(生員試)에 장원으로, 진사시(進士試)에 부장원으로 합격했으며, 1531년(중종 26) 문과에 급제했다.1
1533년(중종 28) 주서(注書)로서 무과 실시 방법에 대해 아뢰었으며2, 이듬해 봉교(奉敎), 전적(典籍), 정언(正言), 또 그 이듬해 이조좌랑(吏曹佐郞)을 거쳤다.1
1536년(중종 31) 4월 다시 정언으로 임명되었다가 11월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로 옮겼으며, 12월 병이 있던 임억령(林億齡) 대신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임명되었다.2
이듬해 병조정랑(兵曹正郞), 이조정랑(吏曹正郞)을 거쳤으며, 조부 박광영(朴光榮)의 상을 당하자 고인인 아버지 박조(朴藻)를 대신해 상복을 입었다.
상을 마친 후 승문원교검(承文院校檢)을 거쳤다가 1541년(중종 36) 영월군수(寧越郡守)로 나갔다.
당시 3명의 군수가 연이어 죽어서 민심이 흉흉했는데, 박충원이 제문을 지어 단종(端宗)의 묘에 제사를 지낸 후 사람을 시켜 지키니, 5년 동안 재직하면서 탈이 없었다고 한다.
1545년(명종 즉위년) 임기를 마치기 전에 소환되어 원접사 정사룡(鄭士龍)의 종사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직강(直講),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 군자감첨정(軍資監僉正),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 사성(司成)을 거쳤다.
이듬해 외직인 성천부사(成川府使)로 임명되었으나 사직했으며, 중시(重試)에 뽑혀 예빈시정(禮賓寺正)으로 승진했다가 우통례(右通禮)·교서관판교(校書館判校)로 옮겼다.1
1548년(명종 3) 2월 좌통례(左通禮)로서 경상우도(慶尙右道)에 파견되어 백성을 구휼했으며, 9월 영의정(領議政) 홍언필(洪彦弼)에게 궤장(几杖)을 하사하는 교서(敎書)를 지었다.
1550년(명종 5) 1월 동부승지(同副承旨), 4월 우부승지(右副承旨), 윤6월 대사성(大司成)을 거쳤다가 7월 다시 우부승지로 임명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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