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무
두무(중국어: 竇武; 168년 10월 25일 사망)는 자(字)가 유평(游平)이며, 후한 시대의 중국 철학자이자 정치인이었다.
출생~사망 연도 미상 ~ 168년마지막 수정 2026. 10. 16. 오전 8:03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연도 미상 ~ 168년
- 번체자
- 竇武
- 간체자
- 窦武
- 한어병음
- Dòu Wǔ
두무(중국어: 竇武; 168년 10월 25일 사망1)은 자 유평(游平)을 쓰며, 동한 시대의 중국 철학자이자 정치인이었다. 그는 유교 학자로 알려졌으며, 환제 치세 동안 낮은 직급의 관리로 복무하였다. 그러다 그의 딸 두묘가 황비에서 황후로 높아지자 승진하였고, 딸이 황태후가 되어 영제의 섭정을 맡게 되면서 결국 가장 중요한 황실 관료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진번과 함께 환관들의 권력을 억제하고 유교 학자들을 황실 정부에 등용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와 진번이 가장 강력한 환관들을 제거하려 한 음모가 발각되자, 그는 전투에서 패배하고 자살하였다.
환제 치세의 경력
두무의 아버지 두봉(竇奉)은 후한 광무제(광무제)의 한 왕조 재건 사업에 큰 공을 세운 두융(竇融)의 증손이었다. 두봉은 정샹(定襄) 군의 태수(太守)였다.2 두무는 젊었을 때 유교 경전에 대한 학식으로 이름을 얻었고, 대산관 서쪽 지역에서 그 학식으로 명성을 떨쳤으나,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다.3
이 상황은 165년 그의 딸 두묘가 명문 씨족 출신의 자격을 갖춘 여성으로 선발되어 황비가 되면서 바뀌었다. 이 때문에 환제는 두무를 낮은 직급의 관리로 임명하였다. 같은 해 말, 등맹녀 황후가 폐위된 뒤 황실 관료들은 두무의 명성 때문에 모두 두 비를 새 황후로 세우기를 원하였고, 환제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두 비를 선호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뜻을 따랐다. 두 비는 그해 말 황후로 책봉되었다. 두무는 수도 낙양의 방위군 사령관으로 승진하였고 열후에 봉해졌다.
167년, 유교 관료들과 그들을 지지하던 대학생들이 황제를 해치려 꾀하는 "당인(黨人)"으로 고발된 제1차 당고의 화 때, 두무는 당인들을 위해 나서서 관대한 처분을 청하는 한편 사직을 청하였다(환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4). 그의 중재와 곽서(霍謣)의 중재 덕분에 환제는 당인 가운데 누구도 처형하지 않았으나, 그들의 시민적 권리는 박탈하였다. 그 사이 두무는 당인으로 고발되지 않은 여러 학자들을 중요한 직책에 추천하기도 하였다.
딸의 섭정 기간과 죽음 시기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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