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만
남구만(南九萬, 1629년 ~ 1711년)은 조선의 문신이자 정치가이다. 숙종 때의 소론의 거두이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미재(美齋)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0대조 남재는 개국공신이며 8대조 남지는 문종 때 좌의정이다. 오달제의 처조카이다. 개그맨이자 방송인 남희석이 남구만의 직계 11대손이다. 남구만은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
출생~사망 1629년 ~ 1711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5
남구만(南九萬, 1629년 ~ 1711년)은 조선의 문신이자 정치가이다. 숙종 때의 소론의 거두이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미재(美齋)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12 10대조 남재는 개국공신이며 8대조 남지는 문종 때 좌의정이다. 오달제의 처조카이다. 개그맨이자 방송인 남희석이 남구만의 직계 11대손이다. 남구만은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
1680년(숙종 6년) 보사원종공신 1등(保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김익희, 이경여, 송준길의 문인이다.
생애
충청남도 홍성의 결성(結城)에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김익희, 이경여, 송준길 등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34 효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1657년 정언이 되었다.5 1664년 당시 중전이었던 현종비 명성왕후의 백부 김좌명을 탄핵하였다가 파직되어6 3년 뒤인 1667년 승지로 복직되었다. 연이어 이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이후 형조판서, 도승지, 부제학 등을 지냈다. 1679년(숙종 5) 좌윤을 지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가 소나무를 사사로이 베어 집을 지은 사실과 의 서자 의 비리 등 들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오히려 와 남해로 유배되었다. 1680년, 으로 남인이 몰락하자 도승지로 조정에 복귀해 ,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1680년(숙종 6년) 1등(保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이후 , 을 거쳐 까지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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