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재
길재(吉再, 1353년~1419년)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해평,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다.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말의 삼은으로 불린다.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선산에 낙향하여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김숙자, 최운룡, 김종직 등을 통해 사림파로 학맥이 계승되었다.
출생~사망 1353년 ~ 1419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4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353년 ~ 1419년
- 출생일
- 1353년
- 사망일
- 1419년
- 국적
- 고려
길재(吉再, 1353년~1419년)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해평,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다.1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말의 삼은으로 불린다.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선산에 낙향하여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김숙자, 최운룡, 김종직 등을 통해 사림파로 학맥이 계승되었다.
생애
11세 때 절에 들어가 글을 배우고, 그 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세 때인 1370년(공민왕 19) 박분에게 《논어》, 《맹자》를 배웠으며, 그 뒤 박분과 함께 개경으로 가서 이색, 정몽주, 권근의 제자가 되어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1374년(공민왕 23)에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가 생원시에 합격하고, 그해에 감시에 합격했다.
1386년(우왕 12) 문과에 급제했다. 1387년 성균관 확정이되고, 1388년(우왕 14) 성균관 박사(成均館博士)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1389년 문하주서가 되었으나 나라가 망할것임을 알고 여러 차례 관직을 사양하였으나 왕은 그를 아껴서 사직서를 반려하였다. 창왕 때에는 문하주서가 되었으나, 고려가 쇠망할 기운을 보이자,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관직을 사퇴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후인 1400년(정종 2년)에,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세자 이방원이 그에게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거절하고 고향인 (善山)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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