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드 뤼지냥
기 드 뤼지냥(프랑스어: Guy de Lusignan, 1159년 또는 1160년 – 1194년 7월 18일)은 프랑스 출신의 십자군 기사로 결혼을 통해 예루살렘 왕국의 명예왕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키프로스 왕국의 창업군주가 되었다.
출생~사망 1150년 ~ 1194년 7월 18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09
기 드 뤼지냥(프랑스어: Guy de Lusignan, 1159년 또는 1160년 – 1194년 7월 18일)은 프랑스 출신의 십자군 기사로 결혼을 통해 예루살렘 왕국의 명예왕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키프로스 왕국의 창업군주가 되었다.
생애
기는 프랑스 서부의 뤼지냥가의 위그 8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 가문은 아키텐 공작령의 일부였고 잉글랜드 왕국의 알리에노르 왕비가 소유하고 있었다. 1168년 기는 형제들과 함께 성지 순례에서 돌아오는 한 귀족을 습격해 죽였는데 이 때문에 당시 아키텐 공작 리샤르로부터 추방당했다.
기는 이후 형 아모리가 이미 터를 닦아 놓았던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 왕국으로 가서 왕국의 가신이 되었다. 당시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4세는 병약하여 트리폴리 백작 레몽과 에데사의 보에몽의 연합 세력이 후계를 노리고 쿠테타를 일으킬 조짐을 보였는데 보두앵은 만약을 대비해서 프랑스와 잉글랜드에 연줄이 있는 기를 자신의 누이 시빌라와 기를 결혼시켜 쿠테타를 막으려 했다.
1180년 4월 기는 시빌라와 결혼하고 야파와 아스칼론의 백작에 임명되었다. 이 결혼에서 기와 시빌라는 두 딸을 낳았다. 1182년 보두앵이 지병인 한센병이 악화되자 기를 섭정으로 임명하고 왕국의 통치를 맡겼다. 그러나 기와 르노 드 샤티용은 살라딘과의 2년의 휴전협정을 깨고 이슬람 상인들을 공격아여 살리딘측을 자극했고 군사적 미숙함으로 보두앵의 분노를 샀다. 이에 국왕 보두앵은 기에 대한 믿음을 거두고 시빌라의 아들 보두앵 5세를 공동왕으로 세우면서 기를 섭정직에서 축출하고 시빌라와 기의 결혼을 무효화하려고 하였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기 드 뤼지냥」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7906564)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09 · r11948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