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도
곽도(郭圖, ? ~ 205년)는 중국 후한 말기의 관료로, 자는 공칙(公則)이며 예주 영천군 사람이다. 기주 일대에서 할거한 대장군 원소를 섬겼다. 배잠론(裴潛論)에서 곽도는 영천태수가 조정에 천거하였고 뛰어난 재사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후 원소에게 발탁되어 헌제를 알현하는 원소의 사자(使者)로 평하고 있다.
출생~사망 연도 미상 ~ 205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20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연도 미상 ~ 205년
- 출생
- 예주 영천군
- 사망
- 205년
- 성별
- 남성
- 국적
- 후한
- 경력
- 영천태수가 천거, 원소의 사자
- 직업
- 관료
- 소속
- 원소
- 위치
- 34.0244, 113.8201
곽도(郭圖, ? ~ 205년)는 중국 후한 말기의 관료로, 자는 공칙(公則)이며 예주 영천군 사람이다. 기주 일대에서 할거한 대장군 원소를 섬겼다.
배잠론(裴潛論)에서 곽도는 영천태수가 조정에 천거하였고 뛰어난 재사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후 원소에게 발탁되어 헌제를 알현하는 원소의 사자(使者)로 평하고 있다.
생애
영천태수 음수의 밑에서 계리(計吏)를 지냈고, 그를 통해 장중(張仲)·종요·순욱·장례(張禮)·두우(杜祐)·순유와 함께 조정에 천거되었다.1 이후 신평과 함께 원소에게 임용되었다.
초평 2년(191년), 장도·순심·고간·신평과 함께 기주목 한복을 설득하여 기주를 원소에게 넘겼다.
흥평 2년(195년)에 사자로서 헌제에게 파견되었고, 기주로 돌아오자마자 원소에게 헌제를 맞이할 것을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헌제전(獻帝傳)》과 《후한서(後漢書)》 원소(袁紹)전에 따르면 이는 저수의 계책이며 곽도는 오히려 순우경과 함께 이에 반대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건안 4년(199년)에는 저수와 전풍이 조조에 대하여 지구책을 주장하자 이에 심배와 함께 단기결전을 주장하고, 원소는 이 주장을 지지하였다. 또한 곽도는 감군(監軍 : 원소군의 총사령관에 해당)의 지위에 있는 저수에 대하여 그 세력이 너무 강하다고 참언을 하였다. 이로 인해 감군의 지위와 권한은 3도독(都督)으로 분할되어, 저수·곽도·순우경이 각각 도독에 임명되었다.
건안 5년(200년) 2월, 관도대전이 시작되자 순우경·과 함께 백마(白馬)에 주둔하고 있는 태수 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조조군의 저항으로 안량과 가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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