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왕
고이왕(古爾王, ? ~ 286년 음력 11월, 재위: 234년 ~ 286년 음력 11월)은 백제의 제8대 국왕이다. 구이왕(久爾王)·고모왕(古慕王)이라고도 한다. 일본의 사서 《신찬성씨록》, 《일본서기》등에는 구이(久爾), 구이(仇爾), 고모(古慕)로 이름이 적혀있다. 고이왕은 즉위 후 국가체제의 정비와 왕권 강화에 주력하여 부족의 기반을 다져놓았다. 집권력의 강화를 위하여 좌장(左將)을 설치하여 내외 병마권을 관장하게 함으로써 족장들의 군사력을 약화시켰다. 초고왕, 구수왕과의 가족관계 여부 연대차이로 이견이 존재한다. 기록에 따르
출생~사망 연도 미상 ~ 286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9
고이왕(古爾王, ?1 ~ 286년 음력 11월, 재위: 234년 ~ 286년 음력 11월)은 백제의 제8대 국왕이다. 구이왕(久爾王)·고모왕(古慕王)이라고도 한다. 일본의 사서 《신찬성씨록》, 《일본서기》등에는 구이(久爾), 구이(仇爾), 고모(古慕)로 이름이 적혀있다. 고이왕은 즉위 후 국가체제의 정비와 왕권 강화에 주력하여 부족의 기반을 다져놓았다. 집권력의 강화를 위하여 좌장(左將)을 설치하여 내외 병마권을 관장하게 함으로써 족장들의 군사력을 약화시켰다. 초고왕, 구수왕과의 가족관계 여부 연대차이로 이견이 존재한다. 기록에 따르면 샤냥을 나갔을때 손수 40마리의 사슴을 쏘아 맞혔고2 기러기 한 쌍이 냇가에서 날아오르자 활을 쏘아 모두 맞혔을 정도로 명궁이었고 뛰어난 무예를 소유하였다.
고고학적 시료 분석 결과 풍납토성의 최초 축조 시점이 고이왕의 재위기로 보는 편이 있다.34
생애
《삼국사기》에 따르면 개루왕의 둘째 아들로 보나, 《삼국사기》의 다른 기록 및 《삼국유사》에는 초고왕의 외삼촌이라 되어 있어 논란이 있으며, 초고왕 사후 20년 뒤에 즉위하여 그때로부터 다시 52년을 재위하였으므로 초고왕의 동생 여부에 이견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구수왕이 죽은 뒤 구수왕의 장자인 사반왕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어려서 정사를 감당하지 못하자, 사반왕을 강제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재위 기간 중 괴곡(槐谷: 충청북도 괴산군)·봉산(烽山: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을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 중이던 신라가 자주 침공했고 한사군의 후신인 , 강원도 북부의 과도 충돌하며 나라가 불안정하였다. 또한 남옥저의 일부를 점령하고, 중국 대륙의 서진과 외교관계를 맺었다.그리고 산동반도에 대륙백제를 개척했다. 대방과는 혼인을 통해 휴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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