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사건 · 정치·외교 · 2008년 5월 2일 ~ 2008년 7월 6일 · 37.5692, 126.9780
2008년 4월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이 크게 완화되자 5월 2일 청계광장에서 시작되어 두 달 넘게 이어진 대규모 촛불 시위. 정부는 추가 협의로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들여오기로 했고, 시위와 PD수첩 보도를 둘러싼 법적·정치적 논쟁이 이어졌다.
상세 타임라인
개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2008년 촛불 시위, '광우병 촛불 집회')는 이명박 정부가 2008년 4월 18일 타결한 한미 쇠고기 협상에 반대해 5월 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대규모 촛불 시위이다. 청소년과 가족 단위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시작된 집회는 5월 하순부터 거리 행진으로 커졌고, 6월 10일 정점에 이르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쟁점은 쇠고기 문제를 넘어 교육 정책,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언론 정책 등 정부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반대로 넓어졌다.
시위는 정부의 사과와 청와대·내각 개편, 미국과의 추가 협의를 끌어냈다. 그러나 광우병 위험이 과장되었는지, 시위가 어디까지 평화적이었는지, 경찰 진압이 지나쳤는지를 두고 정부·여당과 시위 참가자, 보수·진보 언론의 평가는 크게 엇갈렸고, 이 논쟁은 이후 재판으로도 이어졌다.
배경
미국에서 2003년 12월 광우병(소해면상뇌증, BSE)에 걸린 소가 확인되자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했다. 2006년 '30개월 미만 소의 뼈를 발라낸 살코기'로 조건부 수입이 재개되었으나 뼛조각이 발견되면서 2007년 10월 다시 검역이 중단되었다.
2008년 4월 18일,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었다. 합의는 30개월 이상 소의 뼈 있는 쇠고기까지 수입을 허용하고, 30개월 미만 소는 편도와 소장 끝부분을 뺀 대부분 부위를 들여올 수 있게 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해도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의 광우병 위험 등급을 낮추지 않는 한 한국이 수입을 멈추기 어렵게 한 조항은 '검역 주권 포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OIE 기준에 맞춘 합의이며 한미 FTA 비준과 통상 신뢰를 위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4월 29일 MBC 《PD수첩》이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송하면서 불안이 크게 번졌다. 인터넷에서는 광우병에 관한 과장되거나 잘못된 정보도 함께 퍼졌다. 학교 자율화 정책(0교시 수업·우열반 허용 등)에 반발하던 중고생들이 초기 집회의 주축이 된 것도 이 시위의 특징이었다.
전개
- 첫 집회(5월 초): 5월 2일 인터넷 카페가 주최한 청계광장 촛불 문화제에는 주최 측 예상(300여 명)을 크게 넘는 최소 1만 명이 모였다. 5월 6일에는 야당과 1,000여 개 시민단체·인터넷 카페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를 꾸렸고, 5월 7일 국회에서는 이른바 '쇠고기 청문회'가 열렸다.
- 거리 행진과 강제 해산(5월 하순): 5월 24일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로 나와 청와대 쪽으로 행진하다 광화문에서 경찰과 맞섰고, 경찰은 25일 새벽 4시 40분께 살수차 등을 동원해 해산에 나섰다. 5월 24~27일 사이 200여 명이 연행되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5월 29일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발표했다.
- 6월의 확산: 5월 31일 밤 서울광장에 5만 명 이상이 모였고 일부는 밤새 청와대 방향으로 진출하려 해 경찰이 물대포와 소화기를 쓰며 부상자가 생겼다. 정부는 6월 2일 고시의 관보 게재를 미뤘다. 6월 5~8일에는 72시간 연속 집회가 열렸고, 6월 6일 현충일 집회 참가자는 경찰 추산 5만 6천여 명, 주최 측 추산 20만여 명이었다. 6월 7~8일 새벽에는 일부 시위대가 경찰 버스를 부수는 등 격렬한 충돌이 벌어져 양측에서 수십 명이 다쳤다.
- 6·10 촛불 대행진: 6월민주항쟁 21주년인 6월 10일 집회에는 경찰 추산 8만 명, 주최 측 추산 70만 명(전국 100만여 명)이 참가했다. 경찰은 이날 새벽 세종로 충무공 동상 앞과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에 컨테이너 60여 개를 쌓아 막았고, 시민들은 이를 '명박산성'이라 불렀다.
- 정부의 대응: 이명박 대통령은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며 사과하고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 개편,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6월 21일 정부는 미국과의 추가 협의 결과를 발표했고, 6월 26일 고시를 관보에 실어 수입을 재개했다.
- 수습과 분산: 6월 30일~7월 6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가 평화적으로 열린 뒤 대규모 집회는 줄어들었다. 이후에는 주말 집회와 지역별 분산 집회, 방송사 앞 집회로 이어졌다.
추가 협의의 내용
정부 발표에 따르면 추가 협의로 미국 정부의 품질체계평가(QSA)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사실상 수입되지 않도록 했고, 30개월 미만 쇠고기에서도 뇌·눈·척수·머리뼈를 들여오지 않기로 했다. 또 문제 있는 작업장을 지정해 조사하고 수출 중단을 요청할 수 있게 했다. 다만 영문 합의문이 공개되지 않았고, 미국 측이 이를 '협상'이 아닌 '논의'로 표현하는 등 양국 발표에 차이가 있어 실효성을 둘러싼 의문도 제기되었다.
엇갈린 시각
정부·여당과 보수 언론은 협상 내용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며 광우병 위험이 과장되었다고 보았다. 수입 재개는 이미 전 정부에서 예고된 일이었다는 주장(이른바 '설거지론')도 폈다. 또 야간 불법 집회와 폭력 사태를 문제 삼아 엄정 대응을 강조했는데, 검찰은 시위 과정에서 전·의경 372명이 다치고 경찰 버스 111대가 손상되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