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사기 사건
사건 · 사회·경제 · 2006년 6월 ~ 2016년 6월 28일 · 35.8710, 128.6010
조희팔 일당이 2006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대구·인천·부산 등지의 법인 20여 개를 내세워 약 7만 명에게서 5조 원이 넘는 돈을 끌어모은 유사수신 사기 사건. 조희팔은 2008년 중국으로 밀항했고, 검찰은 2016년 그가 2011년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결론 냈으나 피해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세 타임라인
개요
조희팔 사기 사건은 2000년대 중후반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다단계 업체 운영자 조희팔과 측근들이 고수익을 약속하며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은 뒤 돌려막기로 굴리다 무너진 사건이다. 대구지방검찰청의 재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2006년 6월부터 2008년 10월 말까지 대구·인천·부산 등에 둔 24개 법인을 통해 7만여 명에게서 모두 5조 715억 원을 모았다. 이 가운데 약 4조 8,701억 원은 앞선 투자자에게 '수익금' 명목으로 다시 지급되었고, 검찰은 실제 범죄수익을 약 2,900억 원으로 추산했다.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다단계·유사수신 사기로 자주 불린다.
주범 조희팔은 수사망이 좁혀오자 2008년 12월 충청남도 태안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밀항했다. 2012년 그가 중국에서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검찰은 2016년 6월 그가 2011년 12월 사망했다고 판단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피해자 단체는 사망 증거가 부족하다며 반발했고, 생존설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수법과 피해 규모
조희팔 일당은 의료기기 임대 사업 등을 내세워 높은 수익을 약속하고 투자자를 모았으며, 새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주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웠다. 이런 구조는 신규 투자가 끊기면 곧바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피해 규모는 집계 기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 모금 총액: 검찰 재수사 기준 5조 715억 원, 피해자 7만여 명.
- 순수 피해액: 투자자에게 되돌아간 돈을 뺀 실제 손실은 약 8,400억 원이라는 보도가 있다(비즈한국).
- 피해자 단체 주장: 피해자 단체인 바실련은 피해액을 약 8조 원으로, 이 가운데 최소 2조 원이 조희팔 쪽으로 흘러갔다고 주장해 왔다.
피해자들 가운데는 생계 자금을 잃은 이들이 많았고, 한국어 위키백과는 피해 구제를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가 30명가량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
경과
붕괴와 밀항
2008년 10월 말 업체들의 영업이 사실상 멈추면서 투자금 반환이 끊겼고, 조희팔은 2008년 11월 지명수배되었다. 그는 그해 12월 충청남도 태안군 마검포 일대에서 배를 이용해 중국으로 밀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관리를 맡았던 측근 강태용도 2008년 11월 중국으로 달아났다. 밀항 과정을 두고는 해경의 묵인 의혹이 제기되어 내부 감찰이 이루어졌다.
사망 발표와 생존설
2012년 5월 조희팔이 중국에서 숨졌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유족은 장례 영상과 사망 증명서를 내놓았지만, 경찰은 화장된 유골로는 DNA 감정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후 조희팔을 봤다는 제보가 잇따르면서 생존설이 계속 제기되었다.
비호 세력 수사
사건의 또 다른 축은 조희팔 일당이 수사기관에 손을 뻗었다는 의혹이었다. 서울고검 소속 김광준 검사는 조희팔 측근과 유진그룹 등으로부터 10억 원 안팎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2013년 7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고, 이 형은 2014년 5월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그는 검사징계위원회에서 해임되었다. 이 밖에도 대구 지역 경찰관 여러 명이 조희팔 측으로부터 돈이나 향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고, 2015년 1월에는 대구지검 소속 수사관이 조희팔 측근에게서 오랜 기간 거액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다. 2016년 검찰 발표에 따르면 조희팔 측은 경찰 정보를 얻기 위해 뇌물 사건으로 해임된 전직 경찰관에게 매달 돈을 주기도 했다. 다만 검찰은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에게 돈이 건너간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재수사와 강태용 송환
대구지검은 2014년 7월부터 12월까지 재수사를 벌여 은닉 자금 흐름을 추적했고, 이 과정에서 약 760억 원의 범죄수익을 맡아 관리한 고철업자에 대한 횡령 사건이 따로 드러났다. 2015년 10월 조희팔 조직의 2인자 강태용이 중국 공안에 붙잡혔고, 그해 12월 국내로 강제 송환되었다.
검찰의 사망 결론
대구지검은 2016년 6월 28일 조희팔이 2011년 12월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서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사망 현장에 함께 있던 사람을 포함한 14명의 진술이 응급실 이송·장례·화장 과정에 대해 구체적이고 일치한다는 점, 중국인 의사와 목격자 2명이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통과한 점, 사망 뒤 제출된 모발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에서 조희팔의 것으로 확인된 점, 장례 영상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검찰은 새로운 단서가 나오면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단체는 "부실한 수사"라며 이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태용 재판
강태용은 2006~2008년 유사수신 범행 등으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22년과 추징금 125억 원을 선고받았고, 2017년 8월 10일 대구고법 항소심도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해 같은 형을 유지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논쟁
- 사망 여부: 검찰은 사망으로 결론 냈지만 DNA로 직접 확인된 것은 아니어서, 피해자들과 일부 언론은 생존 가능성을 계속 제기했다.
- 피해 회복: 범죄수익 상당 부분이 현금·수표로 흩어져 추적이 어려웠고, 피해자들은 범죄수익 환수를 쉽게 하는 법 개정('바실련법')을 요구했다.
- 수사기관 유착: 현직 검사와 경찰, 검찰 수사관이 연루된 사실은 수사기관의 신뢰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의의
조희팔 사건은 고수익을 미끼로 한 유사수신·다단계 범죄가 지역 사회 전체에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보여 준 사례로, 이후 유사수신 범죄를 다룰 때마다 기준점처럼 언급된다. 동시에 주범의 해외 도피와 수사기관 내부의 비호가 결합할 때 피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