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갈등
사건 · 사회·경제 · 2007년 4월 26일 ~ 2016년 2월 26일 · 33.2281, 126.4839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를 짓는 과정에서 주민 동의 절차, 구럼비 해안 등 환경 파괴, 안보 필요성을 둘러싸고 2007년부터 벌어진 장기 갈등. 기지는 2016년 2월 준공되었으나 마을 공동체 분열과 사법 처리, 구상권 문제가 오래 남았다.
상세 타임라인
개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갈등은 국방부와 해군이 서귀포시 강정동 해안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로 하면서 벌어진 사회적 갈등이다. 정부는 2008년 이 기지를 군항과 크루즈 항구를 겸하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짓겠다고 발표했고, 2010년 1월 착공해 2016년 2월 26일 준공했다. 총사업비는 1조 765억 원이었다(프레시안·제주의소리 연표).
갈등의 출발점은 2007년 4월 마을 임시총회의 유치 결정이었다. 유권자 약 1,050명 가운데 87명(자료에 따라 86명)만 참석한 자리에서 표결 없이 박수로 유치를 결의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고, 이후 마을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투표에서는 다수가 반대했다. 반대 측은 절차적 정당성 결여와 구럼비 해안 등 생태계 파괴, 미·중 갈등 속 군사 거점화를 우려했고, 정부와 해군은 남방 해상 교통로 보호와 해양 주권 수호를 위해 기지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배경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은 1993년 12월 합동참모회의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강정 이전에는 서귀포의 다른 해안 지역들이 후보지로 거론되었으나 주민 반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2007년 4월 26일 강정마을회 임시총회가 유치를 선언했고, 5월 제주도 여론조사에서 강정은 후보지 3곳 가운데 찬성률(56.0%)이 가장 높게 나왔다. 국방부는 6월 8일 강정을 최종 후보지로 통보했다.
전개
마을의 분열
유치 결정 과정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마을회는 2007년 8월 11일 임시총회를 다시 열어 유치를 주도한 회장을 해임하고 강동균 회장을 새로 뽑았다. 같은 달 마을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투표에서는 참여 주민 725명 가운데 680명(94%)이 반대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투표를 공식 절차로 인정하지 않았고, 마을은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친척과 이웃 사이에도 왕래가 끊기는 일이 생겼다.
정부는 2008년 9월 11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민군복합항 건설 방침을 정했고, 2009년 4월 제주도·국방부·국토해양부가 협약을 맺었다. 2009년 8월에는 해군기지 추진 등을 이유로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실시되었으나 투표율 미달로 개표되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 제주도의회는 기지 부지의 절대보전지역 해제안을 처리했다.
공사와 충돌
2010년 1월 항만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반대 운동으로 공사가 여러 차례 중단되었다. 2011년 9월 해군과 경찰이 공권력을 투입해 공사를 재개했고, 주민과 활동가 수십 명이 연행되었다. 2012년 3월 7일에는 강정 해안의 상징이던 너럭바위 지대 '구럼비'에서 첫 발파가 이루어졌는데, 이날 새벽 주민 100여 명이 화약 운반 차량을 막으려 공사장 입구를 막아섰다. 대법원은 2012년 7월 5일 기지 건설 사업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이후에도 시공사들의 공사 지연 배상 청구(삼성물산 360억 원, 대림산업 231억 원), 2015년 1월 해군 관사 공사장 앞 농성 천막 강제 철거 등 충돌이 이어졌다. 기지에는 2015년 12월 제주기지전대가 창설되고 제7기동전단이 옮겨 왔으며, 2016년 2월 26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열렸다.
구상권과 사면
해군은 2016년 3월 28일 공사 지연으로 국가가 입은 손해를 물어내라며 주민과 활동가 116명, 5개 단체를 상대로 34억 4,800만 원의 구상권 소송을 냈다(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제주도의회와 지역 국회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철회를 요구했고, 정부는 2017년 12월 소송을 철회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11일 제주 국제관함식 참석 길에 강정 주민들과 간담회를 열고, 정부가 사업을 추진하며 주민들과 깊이 소통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며 위로의 뜻을 전했다. 2019년 2월 발표된 3·1절 특별사면에는 강정 해군기지 반대 등 7개 집회 관련자 107명이 포함되었다(경향신문). 다만 2022년 보도에 따르면 해군기지 관련 사법 처리자 가운데 상당수가 여전히 사면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뉴스핌).
이설·논쟁
- 안보 측 주장: 정부와 해군은 남방 해역의 해상 교통로와 이어도 등 해양 이익을 지키려면 제주 남부에 기동 함대 기지가 필요하며, 대법원도 사업의 적법성을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 반대 측 주장: 반대 측은 유치 결정이 주민 다수의 뜻을 반영하지 못했고,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인근의 연산호 군락과 구럼비 해안이 훼손되었으며, 기지가 미군 함정의 기항지로 쓰여 주변국과의 군사 긴장을 키울 수 있다고 비판했다.
- 공권력 행사: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용산 참사, 밀양 송전탑 등과 함께 강정 사건을 우선 조사 대상으로 삼아 경찰의 과잉 대응을 조사했다. 관련 내용은 밀양 송전탑 갈등, 용산 참사 등과 함께 국가 공권력과 지역 주민 갈등의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영향
강정 갈등은 국책 사업에서 주민 동의를 얻는 절차와 공론 형성의 중요성을 보여 준 사례가 되었다. 기지가 완공된 뒤에도 마을 공동체 회복과 사법 처리자 문제가 숙제로 남았고, 국제관함식 같은 군사 행사가 열릴 때마다 찬반 논란이 다시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