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 피살 사건
사건 · 사회·경제 · 1997년 2월 15일 ~ 1997년 2월 25일 · 37.3838, 127.1335
1997년 2월 15일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로 1982년 귀순한 이한영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거처 앞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열흘 뒤 숨진 사건. 정부는 북한 공작원의 소행으로 판단했지만 범인은 끝내 붙잡히지 않았다.
상세 타임라인
개요
이한영 피살 사건은 1997년 2월 15일 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아파트 거처 앞에서 귀순자 이한영(본명 리일남, 1960~1997)이 괴한들에게 머리에 총을 맞은 사건이다. 그는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열흘 뒤인 2월 25일 숨졌다. 이한영은 김정일과 함께 살며 김정남을 낳은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로, 김정남과는 이종사촌 사이다. 황장엽 망명 사흘 뒤에 일어나 북한의 보복 테러라는 판단이 나왔다. 그러나 범인이 잡히지 않아 사건의 전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배경
이한영은 1976년 이모 성혜림, 어머니 성혜랑과 함께 모스크바로 옮겨 살았다. 1982년 스위스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 망명 의사를 밝히고, 그해 10월 서울에 왔다. 김정일 가족과 얽힌 신분 때문에 귀순 사실은 오래 비밀에 부쳐졌다. 그는 성형 수술을 받고 이름도 바꾼 채 살았다. 1996년 어머니 성혜랑이 서방으로 탈출하는 등 성혜림 일가의 처지가 알려지는 가운데 그는 신분을 공개하고, 김정일 일가의 생활을 다룬 수기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을 냈다. 이 책에는 김일성의 숨겨진 아들 등 북한 최고위층의 사생활이 담겨 있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여러 차례 신변 위협을 호소하며 거처를 자주 옮겼다.
사건
2월 15일 밤, 이한영은 분당의 임시 거처 문 앞에서 괴한 2명에게 총격을 받았다. 위키백과 영어판에 따르면 그의 몸에서 나온 탄환은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에서 발사된 것이었다. 수사 당국은 이 점 등을 들어 북한 특수부대 요원의 소행으로 의심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져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다가 2월 25일 숨졌다.
수사와 여러 견해
- 북한 보복설: 이수성 국무총리는 사건 직후 황장엽 망명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사 당국도 탄환 분석 등을 근거로 북한 공작원의 소행으로 보았다. 이한영이 김정일 일가의 사생활을 폭로한 수기를 낸 일과 성혜랑의 서방 망명이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 다른 가능성: 당시 일부에서는 개인적 채무나 사생활 문제와 관련된 범행일 가능성도 거론했다(위키백과 영어판). 다만 이를 뒷받침하는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범인으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없다. 경찰이 거듭된 위협에도 신변 보호를 소홀히 했다는 책임론이 일었다.
영향
이 사건은 남한 안에서도 탈북자가 북한의 표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2010년 영화 「의형제」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20년 뒤 그의 사촌 김정남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되었다(→ 김정남 암살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