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삼한(三韓)은 마한·진한·변한(변진)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4세기 무렵까지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여러 소국과 그 연맹체를 가리킨다. 마한은 경기·충청·전라 지역, 진한과 변한은 경상도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오래되고 자세한 기록은 3세기 중엽의 사정을 전하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韓)조다. > 시작·끝 연도는 대략적 범위다. 마한 소국은 기원전 3~2세기 세형동검 문화를 배경으로 대두했고, 4세기에 백제·신라·가야로 재편되었다. 지도 표지는 마한의 맹주국 목지국(月支國)의 비정지 가운데 하나인 충남 천안 직산 일대에 두었으며, 익산·나주 등 이설이 있다. ## 구성과 규모 『삼국지』에 따르면 한(韓)은 대방군 남쪽에 있으며 동서는 바다로 막히고 남쪽은 왜와 접하여 사방 4천 리쯤 되었다. - **마한**: 서쪽에 있으며 50여 국(목록상 54국)이다. 큰 나라는 1만여 가, 작은 나라는 수천 가로 모두 10여만 호였다. 목록에 백제국(伯濟國)이 들어 있다. - **진한**: 마한의 동쪽에 있으며 처음 6국이었다가 12국으로 나뉘었다. 노인들은 진(秦)나라의 고역을 피해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 했고, 그 말이 마한과 달라 '진한(秦韓)'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사로국(斯盧國)이 들어 있다. - **변한(변진)**: 진한과 섞여 살며 12국이다. 구야국(狗邪國)과 안야국(安邪國) 등이 들어 있다. - 진한과 변한 24국을 합하면 큰 나라는 4~5천 가, 작은 나라는 6~7백 가로 모두 4~5만 호였다. ## 정치 - **수장**: 각 소국의 수장은 세력 크기에 따라 신지(臣智), 험측, 번예, 살해, 읍차(邑借) 등으로 불렸다. 소국은 중심 읍락인 국읍(國邑)과 여러 읍락으로 이루어졌다. - **진왕(辰王)**: 마한 목지국(月支國)에 진왕이 있었고, 진한·변한 24국 가운데 12국이 진왕에게 속했다고 한다. 진왕은 늘 마한 사람이 맡았다. 진왕의 실체와 권한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 **중국 군현과의 관계**: 소국 수장들은 낙랑·대방군에서 '읍군', '귀의후', '중랑장' 등의 관작과 인장을 받았다. 『삼국지』는 3세기 중엽 대방군이 진한 8국을 낙랑군으로 넘기려다 통역의 착오로 한(韓)의 반발을 사서 신지들이 대방군 기리영을 공격했고, 대방 태수 궁준이 전사했다고 전한다. ## 제천과 소도 - **계절제**: 해마다 5월 씨뿌리기를 마치면 귀신에게 제사 지내고 무리 지어 노래하고 춤추며 밤낮으로 술을 마셨고, 10월 농사일을 마치고도 그렇게 했다. 수십 명이 함께 땅을 밟으며 장단을 맞추는 춤이었다고 한다. - **천군(天君)**: 국읍마다 한 사람을 세워 하늘 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를 천군이라 했다. 정치적 수장과 제사장이 나뉘어 있었다는 점에서 제정 분리의 모습으로 해석된다. - **소도(蘇塗)**: 여러 나라에는 별읍(別邑)이 있어 이를 소도라 했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겼으며, 도망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면 돌려보내지 않았다. 마을 어귀의 솟대와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한다. ## 경제: 농경과 철 - 땅이 기름져 오곡과 벼를 기르기에 알맞았고, 누에를 쳐서 비단과 베를 짰다. - **변한·진한의 철**: 『삼국지』는 "나라에서 철이 나는데 한·예·왜가 모두 와서 가져가며, 모든 시장에서 철을 화폐처럼 쓰고 두 군(낙랑·대방)에도 공급한다"고 적었다. 김해·창원 등지에서 출토되는 판상철부와 덩이쇠는 이를 뒷받침한다. 철 교역은 뒷날 [[금관가야 건국|가야]]가 성장하는 바탕이 되었다. ## 형성과 변천 - 『삼국지』 동이전은 고조선의 [[위만조선 성립|준왕이 위만에게 쫓겨]] 바다로 와서 한(韓)의 땅에 머물며 한왕(韓王)을 칭했다고 적었다. 또 위만조선 말기 역계경이 2천여 호를 이끌고 진국(辰國)으로 갔다는 『위략』 기록, [[고조선 멸망]] 뒤 유민의 남하 등은 북방 주민의 이주가 삼한 형성에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 준다. - 다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주민만이 아니라 선주 토착 집단의 점진적 발전이 삼한 대두의 주된 동력이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정리한다. 마한 소국은 기원전 3~2세기 세형동검 문화를 바탕으로, 한강 유역과 경상도의 소국은 기원전 1세기 이후 철기 문화와 이주민 정착을 계기로 형성된 경우가 많다. - 2~3세기에는 한강 유역의 백제국, 경주의 사로국, 김해의 구야국 등이 각 지역을 이끌었다. 이들은 각각 [[백제 건국|백제]], [[신라 건국|신라]], 가야로 성장했고, 4세기 무렵 삼한의 소국 체제는 막을 내렸다. 영산강 유역 등 마한 남부의 세력은 더 늦게까지 독자성을 유지했다는 견해가 있다. ## 이설·논쟁 - '진국(辰國)'과 삼한의 관계, 진왕의 실체, 목지국의 위치(천안 직산설, 익산설, 나주 반남설 등)는 아직 정설이 없다. - 『삼국사기』는 온조왕 대(서기 8~9년)에 마한을 병합했다고 적었지만, 『삼국지』 기록과 고고학 자료로 보아 마한 소국이 3세기까지 존속한 것은 분명하므로 이 기사는 후대의 사실이 앞당겨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한」](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92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도」](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000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군」](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578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변한」](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968) - [『삼국지』 위서 권30 동이전 (원문, 위키문헌)](https://zh.wikisource.org/wiki/%E4%B8%89%E5%9C%8B%E5%BF%97/%E5%8D%B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