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사건 · 정치·외교 · 1969년 12월 11일 ~ 1970년 2월 14일 · 37.6900, 128.7300
1969년 12월 11일 강릉을 떠나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YS-11 여객기가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 고정간첩에게 납치되어 북한 선덕비행장에 강제 착륙한 사건. 승객 39명은 66일 만에 돌아왔지만 승무원 4명과 승객 7명 등 11명은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상세 타임라인
개요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은 1969년 12월 11일 낮 강릉비행장을 이륙해 김포로 가던 대한항공 국내선 YS-11 쌍발 여객기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고정간첩에게 공중 납치된 사건이다. 여객기는 함흥 인근의 선덕비행장에 강제 착륙했다. 탑승자는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범인 포함)이었다. 이듬해 2월 14일 승객 39명이 판문점을 거쳐 돌아왔지만, 기장·부기장·여승무원 2명과 승객 7명 등 11명은 송환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오늘날까지 남북 사이의 대표적인 미해결 납북자 문제로 남아 있다.
경과
- 여객기는 12시 25분께 강릉을 이륙했다.
- 이륙 10여 분 뒤 대관령 상공에서 앞좌석에 앉아 있던 범인이 조종실에 들어가 권총으로 조종사를 위협했다. 승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항로가 바뀐 뒤 북한 전투기 3대가 따라붙었다.
- 여객기는 13시 18분께 선덕비행장에 내렸다. 북한군이 기내에 올라 승객들의 눈을 가렸다.
- 약 30시간 뒤 평양방송은 기장과 부기장이 '자진 입북'했다고 주장했다.
수사 발표 논란
내무부 치안국은 12월 15일 승객 가운데 강릉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가 주범이며, 그가 부조종사와 다른 승객을 포섭해 납북을 꾸몄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는 북에 가족이 있는 월남민 출신이라는 배경과 과거 연행 기록 등에 기댄 추정이었다. 이튿날 조중훈 대한항공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장관과 치안국장이 확증 없는 추리라고 말했다고 밝히며 부조종사의 연루를 부인했다. 1970년 2월 15일 중앙정보부와 치안국은 송환자 조사를 바탕으로, 육군 헌병 출신 고정간첩 조창희가 단독으로 범행했다고 다시 발표했다. 첫 발표에서 지목된 이들은 이 발표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야당인 신민당은 수사 당국의 책임을 물었다.
송환 교섭
유엔군사령부는 12월 22일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 회의에서 탑승자와 기체 송환을 요구했다. 북한은 유엔군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정부는 일본 적십자사와 국제적십자위원회를 통해서도 협상을 시도했다. 국내에서는 북한 규탄 집회가 이어졌고, 여러 나라 항공사도 북한을 비난했다. 북한은 1970년 2월 5일 일부 송환 방침을 밝혔고, 2월 14일 승객 39명만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냈다. 기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
정부는 사건 직후 탑승객 검문검색 강화, 공항 직원 사법권 부여, 민항기 승무원 무기 휴대 허용, 익명·타인 명의 탑승 금지 등 항공 보안 대책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북한은 "납북자는 없다", "모두 자기 의사로 남았다"고 주장해 왔다. 2001년 2월 제3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미송환 여승무원 1명이 평양에서 남쪽의 어머니를 만났다. 미송환 승객의 가족은 2008년 가족회를 만들어 생사 확인과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2020년에는 유엔에서도 이 사건이 거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