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사건 · 전쟁·전투 · 1996년 9월 18일 ~ 1996년 11월 5일 · 37.7220, 128.9950
1996년 9월 18일 새벽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에서 북한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함이 좌초된 채 발견되었다. 이후 49일 동안 침투 인원 26명을 찾는 소탕 작전이 벌어졌다. 북한 측은 24명이 숨지고 1명이 생포되었으며, 한국 측도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상세 타임라인
개요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1996년 9월 18일 새벽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앞바다에서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함이 좌초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잠수함에 탔던 26명은 해안 절벽을 올라 괘방산 일대로 흩어졌다. 군은 11월 5일까지 49일 동안 대규모 소탕 작전을 벌였다. 북한 측은 동료에게 사살된 11명과 교전 중 사살된 13명을 합쳐 24명이 숨졌고, 1명(이광수)이 생포되었으며, 1명은 끝내 행방을 찾지 못했다. 한국 측에서는 군인과 경찰, 예비군, 민간인 등 10여 명이 숨졌다. 사망자는 집계에 따라 13~18명으로 다르다.
배경
생포된 이광수의 진술에 따르면 북한은 1994년부터 공작원 침투에 잠수함을 썼다. 이번에는 먼저 상륙시킨 공작원들이 강릉 일대 군사 시설을 정찰한 뒤 잠수함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뒤에 발견된 필름에서는 군 시설을 찍은 사진이 나왔다. 1996년은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던 때였다. 4월 북한의 판문점 무력시위와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이 잇따랐다. 한편 미국과는 미군 유해 송환 등을 협의하고 있었다.
침투와 좌초
- 잠수함은 9월 13일 새벽 5시 원산항을 떠났다.
- 9월 15일 새벽 강릉 부근 해안에 공작원 3명을 상륙시켰다.
- 9월 17일 밤 10시께 이들을 다시 태우려고 해안에 다가가다가 안인진리 앞바다 암초에 걸려 좌초했다.
잠수함은 북한이 1980년대부터 자체 건조한 상어급이었다. 탑승자들은 배를 버리고 높이 수십 m의 해안 절벽을 올라 도로를 건너 괘방산 쪽으로 달아났다.
소탕 작전
- 9월 18일 새벽 1시 30분께 해안 도로를 지나던 택시 기사가 바다 위의 잠수함과 근처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 군은 새벽 3시 40분께 침투 흔적을 확인하고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이어 전군 경계 태세를 내렸다.
- 오후 4시 30분께 수색대가 강동면 청학산 정상 부근에서 민간인 복장의 시신 11구를 발견했다. 이들은 동료들에게 사살된 승조원 등으로 밝혀졌다. 15분 뒤 강릉 모전리 동해고속도로 부근 숲에서 이광수가 주민 신고로 생포되었다.
- 9월 19일 이후 칠성산·단경골 일대에서 교전이 이어졌고, 군은 이틀 만에 7명을 사살했다.
- 나머지 공비들은 평창·인제 방향으로 북상했다. 10월 9일 평창에서 버섯을 따던 민간인 3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고, 군은 공비 잔당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10월 22일에는 인제 지역에서 땔감을 구하던 육군 일병이 공비들에게 살해되었다.
- 11월 5일 새벽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마지막 공비 2명과 교전이 벌어져 군인 4명이 전사했다. 같은 날 오전 2명이 사살되면서 작전이 끝났다.
작전에는 육군 여러 사단과 특전사, 해군 1함대, 공군 전투비행단, 경찰, 예비군이 동원되었고, 연인원은 150만~200만 명으로 보도되었다. 작전 기간 오인 사격과 사고로 숨진 장병과 민간인도 있었다. 강원도 관광·농림어업 피해는 2,000억~2,500억 원으로 추산되었다.
논란
- 택시 기사의 신고가 있기 전까지 해안 경계 부대가 잠수함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경보 발령도 늦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 숨진 일병은 처음에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사살된 공비가 그의 전투복을 입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공비에게 살해된 사실이 뒤늦게 인정되었다.
- 북한은 9월 23일 인민무력부 대변인 담화로 "훈련 중 기관 고장으로 표류한 잠수함"이라고 주장하며 승조원과 잠수함 반환을 요구했다.
결과와 영향
북한은 12월 2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심심한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남북 관계에서 북한이 공식으로 사과한 드문 사례다. 12월 30일 북한 측 사망자 24명의 유해가 판문점을 거쳐 북한에 넘겨졌다. 생포된 이광수는 전향해 해군 군무원으로 일했다. 좌초된 잠수함은 강릉 통일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사건 뒤 육군은 보병 분대에 유탄발사기와 기관총 사수를 넣는 등 편제를 바꾸었다. 해안 경계 체계와 대침투 작전 절차도 보완되었다.